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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은 총재의 '과도함' 언급과 2019년의 실패 - Reuters

폴라리스한 2023. 4. 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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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4월11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금융시장에서 금리인하론이 나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금융시장이 실물경제 상황에 비해 과도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실물 경제 상황에 비해 늘 앞서 반응하는 속성이 있다"

"올해 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 같은 기대가 시장에 많이 형성됐는데 금통위원들은 그런 기대가 과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금융 부문에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가 선반영돼 시장이 (금리 인하 가능성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금통위원의 중론이다"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지만 발언자와 발언 시점은 각각 다르다. 앞의 발언은 이주열 한은 총재가 2019년 2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고 뒤의 발언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11일 금통위 기자간담회 발언이다.

발언의 맥락은 동일하다.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금통위원들이 판단하는 통화정책 경로보다 빠르다는 경고를 주기 위해 이뤄졌다.



▲ '시장의 법칙'

이창용 총재는 경기와 물가를 보는 금통위원들과 시장의 시각에 편차가 존재할 수 있다며 평가는 사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OPEC+의 감산과 중국의 리오프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상반기는 몰라도 하반기 물가의 하향 안정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게 이 총재의 지적인 듯싶었다. 2분기에 국내 물가상승률이 3%대에 수렴해도 연말까지 하향 안정화 추세가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하니 먼저 달리지 말라는 당부로 들리기도 했다.

다만 '이 총재들'이 언급한 것처럼 시장이라는 곳은 때론 과도한 반응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시장참가자들에게 정보가 불균형하게 배분되거나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나타난 정보 배분의 불균형과 해석의 차이로 지속적인 초과 수익을 낼 수는 없다. 결국 다른 투자자를 앞서는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게 관건이다. 시장 정보가 균등하게 배분돼 있고 모든 투자자들이 같은 해석을 내리며, 이 같은 집단적인 노력이 가격에 완전히 반영돼 있다고 믿는다면 초과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역행 투자자로 유명한 하워드 막스는 이같이 말했다. "시장은 이길 수 없는 것이라고 다른 투자자들이 믿도록 내버려 두자. 모험을 하지 않을 사람들의 기권이 모험을 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한은 총재만 믿었던 2019년의 실패

2019년에 한은과 금통위의 경제 판단, 통화정책 경로 판단을 '이길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은 나가떨어졌다.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가 성급하다는 이주열 당시 한은 총재의 발언은 2월 이후에도 몇 달간 이어진다.

이 총재는 4월에도 장단기 시장금리 역전 현상을 언급하며 '시장의 과민반응'을 지적하지만 금통위는 같은 달 통화정책방향 성명에서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문구를 삭제해 2018년부터 이어져온 금리인상 기조가 종결됐음을 선언적으로 명시했다. 이 총재의 '과도한 시장' 발언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외국인은 국채선물 매수와 이자율스왑(IRS) 오퍼를 통한 파상 공세를 이어갔다.

5월 금통위 회의땐 조동철 위원이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내면서 전반적인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지만 이 총재는 6월 말 열린 출입기자 오찬에서 "현재 통화정책 기조는 실물경제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수준이며 기대인플레 기준으로 보면 기준금리가 중립 수준을 상당폭 하회하고 있다"고 밝혀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2019년 8월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다. 반도체 경기 부진에 따른 성장률 하락과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심리 악화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2019년 국내 경제는 2.0%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통화정책 지형을 바꾼 가장 큰 변수는 연준의 행보였을 것이다. 2018년 12월에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2019년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갑작스럽게 금리 인상 중단을 선언하면서 국내 시장 분위기도 요동쳤다.



▲위험 있지만 모험 거는 게 시장..금통위원들 불편할 이유 없어

2019년 상황이 이번에도 반복되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물가상승률은 0.4%에 그쳐 3.5% 상승(한은 전망 기준)이 예상되는 올해와 큰 차이를 보였다. 저물가 장기화를 상수로 두고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을 경기에 좀 더 집중시킬 수 있었던 2019년과 지금 사정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2019년 한은의 경기, 물가 전망이 처참하게 어긋난 것과 실제 통화정책의 방향이 시장의 베팅에 수렴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할 듯하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한은의 물가 전망이 지난해부터 실적치와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한은이 물가 전망에 공공요금 변수를 들고 나왔을 때 편차가 급격히 확대됐던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금통위원들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금통위원들은 아마도 기준금리를 웬만해선 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스탑 앤 고(Stop and Go) 학습효과 역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혹시 너무 빨리 긴축 기조를 되돌렸다가 나중에 다시 물가가 치솟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크리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먼저 반영한 후 빨리 따라오라는 시장의 손길이 거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참가자들 역시 여기서 멈출 수 없다. 한은을 이길 수 없다고 다른 투자자들이 믿는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모험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 기권하면 모험을 할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금통위원들의 경고를 받고도 모험을 멈추지 않는 투자자들은 자기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 금통위원들의 경고를 받고 모험을 멈췄다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받아든 투자자들도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때 가서 누구 때문이었다느니 하는 핑계는 구차하다.

그럼에도 2019년 8월엔 많은 이들이 이주열 당시 총재에게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금 시장이 너무 앞서간다고 금통위원들이 너무 서운해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