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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한민국 은행에는 미래가 없다 - Reuters

폴라리스한 2023. 2. 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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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2월27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은행 돈잔치' 헤드라인은 2000년 들어 국내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IMF 사태 당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회생한 일부 은행이 이자 장사를 통해 번 돈으로 자기 식구들 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보도는 여론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에 대규모 성과급이 지급됐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지다 보니 여론은 악화됐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책금리를 급격히 낮췄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후 글로벌 경제 회복과 함께 통화정책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자 대내외 금리가 상승세를 타며 은행 수익 증가세도 가팔라졌다.

이때 정부가 내놓은 게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이다. 금융산업을 국내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됐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경우 규모가 작고 예대금리차 등에 의존한 단순한 수익 구조를 보이고 있어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금융시장의 선진화, 금융회사의 국제화 등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틀을 짜겠다는 구상이었다.

2007년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되며 정부의 금융산업 선진화 구상을 현실화할 인프라가 갖춰졌고,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글로벌 IB 전략을 내놓으며 변화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 오락가락하는 컨트롤 타워와 은행의 보신주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분위기는 일변했다.

금융시장의 선진화, 금융회사의 국제화 속에 내포된 과도한 위험 추구 성향이 시스템 리스크를 키웠다는 평가 때문이다.

'금융이 미래'라던 정부는 이제 금융위기 과정에서 불거진 손실의 책임 소재 규명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영기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해외파생상품 투자에서 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2008년 당시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기 직전까지 갔던 건 정책당국자들에게 큰 트라우마가 됐다. 당시 산은은 우여곡절 끝에 인수전에서 철수했는데 그해 9월 리먼브러더스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드러내며 파산 절차를 밟았다. 만약 산은이 리먼브러더수를 인수했다면 글로벌 금융시장 붕괴와 함께 한국 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후 이어진 금융규제당국의 '안전제일주의' 행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뚜렷한 기준 없이 오락가락하는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은행권 전반의 IB 투자 분위기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2010년대 들어서도 은행들은 원래 잘하는 이자 장사나 충실히 하라는 분위기가 지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은행들이 호기롭게 내놓았던 역량 강화 방안들은 되돌려지거나 축소됐고, 은행권 전반에서 대규모 인력 이탈이 이어졌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금융소비자 보호가 최우선 과제로 등극하다 보니 은행들이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하기 더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 정부 눈치보기 급급한 은행들..'비전이 없다'

그리고 2023년이다. 은행이 작년에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300~400%의 성과급을 지급한 데 이어 일부 명예퇴직자에게 10억원까지 지급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은행 돈잔치 대책 마련' 발언을 내놓은 이후 금융당국은 신속히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 제도개선 TF'를 발족시키고 그동안 은행권에 대해 제기된 다양한 문제점들을 전면 재점검해 과감히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고객에게 충분한 선택권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이자 수익에만 치중하고 예대금리차를 기반으로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감안해 업권내 경쟁을 강화하는 등 은행권 진입 정책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은행의 보수 체계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개선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상반기 중에 후딱 손질해 내놓을 금융 선진화 방안이 국내은행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긍정적인 영향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에서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자사의 비전을 설정하고 조직과 역량을 확보해 주체적인 변화를 설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은행 금융회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며 상업은행들이 그동안 경쟁력을 보였던 담보 대출, 투자 자문, 신용카드 등 거의 모든 서비스 부문에서 격렬한 위협을 받고 있는 시점에 이같은 '비전 부재'는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다.

기술 기업들이 독점적인 플랫폼 영향력을 활용해 고객들에 대한 대출, 결제, 자산 관리 등 모든 은행 서비스를 역설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도 한국의 은행들은 현 정부의 정책 추진 의도를 파악하는 데 그나마 남은 역량을 상당 부분 소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상충되는 정책 목표와 금융당국의 오만

금융당국은 지난해 연말 국내은행들에 3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경우 순환 근무를 원칙으로 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우리은행에서 한 직원이 6년간 614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문제가 되자 내놓은 조치다.

급변하는 금융환경 아래 전문성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금융당국이 은행내 인력 배치까지 이처럼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게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고급 인력 유치나 인력 전문성 양성을 위한 인센티브 확대에 제동을 걸면서, 은행에 이자장사만 하지 말고 실력을 키워 비이자 수익을 늘리라는 모순된 주문을 하는 데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같은 금융당국이라도 은행 산업을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법은 달라진다. 문제는 이처럼 정책 목표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은행 산업을 당국이 한 방향으로 바르게 이끌 수 있다는 오만이다.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현재의 은행 시스템을 상명하달식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측정이 쉽고 이해하기도 쉬운 목표를 조심스럽게 설계하고 동의를 구하면서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면서,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역량을 갖추고 새로운 시도를 감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대한민국의 은행에는 미래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