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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월12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일부 언급과 관련해 시장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가 단기금리, 자금시장과 관련해 내놓은 언급 중 시장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어긋나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안채 3개월 금리 하락이 통화정책 베팅(?)
이날 기자간담회의 하이라이트가 이 총재의 '시장 과도 반응' 발언이었다는 데 대해 이견을 다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 총재는 "올해 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 같은 기대가 시장에 많이 형성됐는데 금통위원들은 그런 기대가 과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금융 부문에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가 선반영돼 시장이 (금리 인하 가능성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금통위원의 중론"이라고 밝혔다.
국내 물가 경로나 미국 통화긴축 종료 시점, 대내외 신용 이벤트의 진행 방향 등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상황에서 이 총재가 금통위의 정책 판단과 시장의 기대 수준간 균형을 맞추려 시도하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시장참가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건 그 이후 발언이다.
이 총재는 "시장은 경기가 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낮아질 거다, 그렇기 때문에 한은이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 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며 "3년물 금리가 떨어지는 것은 그럴 수 있는데 90일물 등이 너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좀 과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90일물(91일물 금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 등 단기금리가 이렇게 떨어지는 데 대해 "금년 말에는 경기 둔화 때문에 금리를 낮출 거라는 기대가 완전히 자리잡고 있다"라며 "저는 단기금리가 이렇게 내려간 데에는 실리콘밸리뱅크 사태가 지난 다음에 연준이 피벗(정책기조 전환)을 할 것이다, 그리고 금리를 빨리 낮출 거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자금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우리 국채 시장에도 많이 들어온 요인이 굉장히 많이 작용하고, 또 연준이 피벗하고 국내 경기도 나빠지니 한국은행도 빨리 피벗하지 않겠느냐라는 기대가 같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1년물 금리를 예로 들며 시장의 과도한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을 언급했다면 누구나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90일물 금리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장에서 통안채 3개월물은 통상 자금운용 관점에서 접근하는 구간이다. 통화정책 베팅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최근 통안채 3개월물 금리는 왜 떨어진 걸까? 11일 종가 기준 통안채 3개월물 금리는 3.38%로 분명히 기준금리인 3.5%를 하회하고 있다.
최근 통안채 3개월물 금리가 하락한 데에는 외국인 재정거래 수요가 늘어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거래는 원화 통안채 금리와 통화스왑(CRS) 금리간에 일정 마진이 발생할 때 기계적으로 발생한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의 신용위험과 달러자금 롤오버에 대한 유동성 위험을 분담하긴 하지만 큰 틀에선 무위험 차익거래로 분류된다. 통화정책 베팅과는 거리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바로 레포금리다. 자금시장의 조달금리로 통하는 레포금리는 최근 3.25%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자금시장의 수요와 공급간 균형점에서 결정되는 레포금리가 3.25%이니 머니마켓펀드(MMF)든 어디든 현금으로 묵히기보다 조달금리 위에서 움직이는 채권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레포거래를 이용하려는 기관들 입장에서도 담보용 채권 확보를 위해 통안채 3개월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레포금리는 왜 기준금리보다 낮은가? 한은이 자금시장을 여유롭게 운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레고랜드발 신용 위축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은이 시중 자금을 여유롭게 운용해 온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은의 이같은 공개시장운용이 금융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통화정책의 물가안정 중시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온 것도 이 총재다.
이 총재가 관련 내용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은 내부에선 최근 통안채 3개월물 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한 이유를 분석한 보고서가 회람됐다. 그리고 보고서 내용은 시장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한은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서베이에서도 시장의 3개월 이내 금리인하 기대감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감안할 때 "통화정책 변경 기대감도 크지 않은데 최근의 90일물 금리 움직임은 과하다"는 지적은 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만 "연준과 금통위의 피봇 기대감 때문에 나타난 최근 90일물 금리 움직임은 과하다"는 발언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한은 차입과 단기금리 관계 없다(?)
이 총재가 자금시장 관련한 팩트를 착각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또 한군데서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한국은행 차입 관련 부분이다. 이날 한 기자는 최근 단기금리가 낮아진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한은 차입 규모가 굉장히 커진 부분을 지적했는데 이 총재는 다소 뜬금없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 총재는 "지금 한은 차입금 규모를 보면 법적으로 40조까지 정부가 빌릴 수 있고 이것은 정부가 갖고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인데 이게 40조를 찍었다가 줄어들었다 한다"며 "이것이 만일 단기채권에 영향을 준다고 하면 (금리가) 하루 이틀이면 다 바뀌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 총재는 "아마 기자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세수가 덜 걷혀서 기본적으로 채권 발행량이 미래에 늘어날 거니까 그런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을 하실 수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단기 금리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친절하지만 다소 혼란스러운 발언을 더했다.
기본적으로 한은 차입이 단기 금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에 대한 총재의 판단을 짚고 싶다.
세입과 세출에 미스매칭이 날 때 기재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은 차입이고 또 하나는 재정증권 발행이다. 기재부 입장에선 한은 차입이 너무 많다 싶으면 재정증권 발행을 늘리면 되고 이전에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세수 급감으로 한은 마이너스 통장을 최대치로 끌어 쓴 올해까진 현재 1회차 기준(월 4회) 1조원씩 하는 재정증권 발행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기재부가 2월에 재정증권 발행을 2조~2.5조원으로 늘렸다면 3월 말까지 한은 차입을 10조원은 덜 했을 것이다.
기재부가 한은 차입을 줄이고 재정증권 발행 물량을 늘렸다면 재정거래 수요를 분산시키는 등의 효과를 내면서 단기금리를 지금보다 끌어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게 하나의 경로다.
여기서 다시 한은의 공개시장운영 문제가 나온다. 기재부의 한은 차입이 늘어난 만큼 한은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자금을 흡수한다.
하지만 한은이 단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통안채 발행보다 RP 매각이나 통화안정계정 입찰을 선호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부분이다. 최근 단기금리 하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한은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부분이다.
이날 이 총재가 어떤 의도로 상기 발언을 했는지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은에선 이 총재가 다소 급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중요한 맥락을 빼놓아 혼선을 빚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거시경제 전문가인 이 총재가 일부 분야에 대해선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한은 총재의 금통위 기자회견은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통화당국의 입장을 피력하는 자리다.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논리의 기반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팩트 부분에서 혼선이 초래된다면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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