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월11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달러/원 환율은 시장 예상을 소폭 하회한 미국 소비자물가(CPI)를 반영하며 1310원대에서 출발한 후 장중 1300원 초반대 진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 역시 미국 국채금리 하락분을 반영하며 3년물 3.2%대 초반까지 움직인 후 공방을 펼칠 전망이다.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4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9%를 기록했다. 3월(5.0%)보다 낮아졌고,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5.0%)도 하회한 수치다. 지난 2021년 4월 이후 최소 폭이다. 지난달 대비 상승률과 전월, 전년 동월 대비 근원물가는 모두 시장 예상치 수준으로 나왔다.
최근 나우캐스팅 지수를 활용해 지표를 예상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이번 CPI가 컨센서스를 상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시장참가자들이 정말 두려워했던 건 흐름이다.
지난 주말 3월 25만 명 고용 증가라는 성적표를 들고 나니 주중 물가 지수 발표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초 50만 명 증가라는 1월 고용성적표를 받아들고 난 후 '긴가민가'하다가 물가지표까지 컨센서스를 상회하며 연타를 맞았던 경험 때문이다.
이번에 물가지수가 시장 컨센서스로 나오면서 대반전에 대한 부담감은 크게 줄게 됐다. 연방준비제도가 긴축 중단 시그널을 준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반전의 확률이 낮아진 셈이다. 이제 시장은 6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98%까지 반영하고 있고 9월 금리인하 가능성은 80%까지 반영하고 있다.
지난 2년을 수놓았던 미국의 고강도 통화긴축과 달러 강세 테마는 빛을 잃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고, 최근 아시아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평가절하된 원화 가치가 반등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현재로서 변수는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 정도다.
미국 연방정부가 기술적 디폴트를 선언하게 되면 논리적으로는 달러가 주요국 통화에 비해 약세로 가고 미국 국채금리도 급등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난 2011년을 복기해 보면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상황에서도 전세계 자금은 달러로 모였고 금리는 떨어졌다. 이는 불확실성 확대 속에 신흥국 자산에 대한 캐리 트레이딩이 청산되면서 달러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으로 부채한도 협상이 '정치쇼'라는 인식이 큰 상황에서 미국 디폴트 효과의 장기적 파급에 대한 우려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가 흔들리면서 달러가 다시 비상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보다는 미국 정치 시스템의 취약함만 노정하는 이벤트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연방정부 디폴트가 고용, 소비 등에 충격을 준다는 점이 미국 정책기조 전환 가속화 논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달러 약세를 추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 원화는 미국 긴축 종료 테마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면서 움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번 CPI 지표로 미국의 긴축 종료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화 약세에 베팅했던 세력들이 일부 포지션을 청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채권시장 역시 다시 한 번 랠리 시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5월과 6월 미국 물가상승률이 기술적으로 다시 한 번 크게 떨어질 여지가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물론 미국 소비자물가와 근원 소비자물가의 전월비 상승률이 0.4%를 유지하고 있고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 논란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경기둔화의 폭이 예상보다 깊지 않은 가운데 미국 물가가 3%대에서 더 내려가지 않는 시나리오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하다.
미국 물가가 3%를 저점으로 고착화될 경우 미국 장기금리는 이미 적정 수준까지 내려와 있는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커브 스티프닝 논리를 강화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채권시장에선 3.2% 벽을 넘는 게 관건이다.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운용 방침 변경으로 지급준비금 마감을 앞두고 단기자금시장이 '타이트'해지면서 레포금리 등 조달금리가 급등했다.
이번 사태로 은행들이 향후 자금 운용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여 전반적인 시중 유동성이 조여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국내 통화당국이 아직 금리인하 언급 자체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심화되고 있는 역캐리 파고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가 당분간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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