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ELS발 내년 대규모 채권 원금북 수급 공백 가능성..크레딧물 '산 넘어 산' - Reuters News
서울, 10월31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중국 부동산 위기 여파로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가 폭락하며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채권시장에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만기가 대거 도래했을 때 관련 투자자금이 이탈하면 증권사 채권 원금북에 담보로 잡혀 있던 채권, 특히 신용도가 떨어지는 여신전문채권 등의 매물이 급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 H지수 폭락에 ELS 자금 이탈 가능성..채권 원금북 '직격탄'
ELS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정해진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하는 대표적인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다. 보통 1~3년으로 만기를 설정하고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조기상환이 이뤄진다.
관련 상품의 주가가 기준치 아래로 떨어지면 이자와 원금이 자동 상환되지만 지정 구간을 벗어나는 낙인(Knock In)이 발생하면 계약 조건에 따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문제는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대규모 만기가 예정된 홍콩H지수 연계 ELS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 2조3000억 원, 내년에 13조9000억 원 규모의 홍콩H지수 연계 ELS 만기가 돌아오는데 대부분 2020년 말~2021년 초에 발행된 상품이다. 특히 내년 4월에만 2조4000억원이 만기가 도래하는 등 상반기에 만기가 집중돼 있다.
현재 홍콩H지수가 2021년 초보다 40% 이상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다수의 상품이 하단 배리어를 이미 터치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7000선 안팎에서 등락하던 홍콩H지수는 중국의 경제 부진과 부동산 리스크 영향으로 추락을 거듭해 지난 30일엔 5960선까지 밀렸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에도 기업과 가계의 심리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고금리 지속과 주요국의 경기부진 가능성도 고조되고 있어 홍콩H지수가 내년까지 의미 있게 반등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도 큰 상황이다.
채권투자자들 입장에선 원금손실 가능성이 부각된 데다 대체 투자 대비 매력도도 떨어진 ELS 시장로부터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발행하면서 고객들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채권에 투자하는 원금북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채권 원금북은 지난 10여년 간 ELS 시장 확대와 함께 규모를 키워왔기 때문에 급격한 투자자금 이탈이 현실화할 경우 채권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증권사 채권본부장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ELS 상품의 경우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며 "기존에 ELS에 투자했던 자금이 빠지면 채권 원금북에서 매물이 나올 수 있는데 원금북에 은행채, 금융채 등이 많이 있다 보니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크레딧물 '옥석가리기' 불가피..여전채 등 타격 전망
ELS로부터의 자금 이탈이 즉각적인 담보채권 매도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사들 입장에서도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매조건부채권(RP)북이나 프랍북 등을 통해 일정 부분 물량을 소화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다만 증권사들의 내부 리스크 한도 등을 감안할 때 시중은행채 외에 여전채, 회사채 등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채권은 들고 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B증권사 채권본부장은 "대형 증권사별로 1~2조원씩은 관련 채권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면 관련 ELS가 대부분 조기상환되지 않는다고 봤을 때 10조원 정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CD금리 대비 20bp 정도의 가산금리를 줄 수 있는 시중은행채, 여전채, 회사채 등 2년 만기 구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사 입장에선 자체 평가에도 문제가 생기니 가급적이면 시장에 충격을 주기보다 다른 북에서 소화할 수 있는 건 소화하도록 방침을 세울 것"이라며 "은행채나 일부 은행 계열 카드채 등은 RP북 등으로 넘길 수 있을 텐데 여전채나 회사채를 안고 가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 시점에서 향후 홍콩H지수 움직임이나 ELS 자금 이탈 여부, 내년 시장 상황 등을 미리 예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C증권사 채권본부장은 "ELS 원금북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원금북이 채권을 추가로 매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다만 돈이라는 건 돌고 돌기 때문에 하이일드를 추구하는 옵션선호형 고객들이 ELS에서 자금을 빼서 결국 어딘가에 투자할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내외 시장상황을 보면 모든 게 우려스럽지만 막상 내년에 어떻게 시장상황이 달라져 있을지는 알 수 없다"며 "그때 고민은 그때 가서 해야지 지금 포지셔닝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