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최악의 한 수(?)'..달러 외평채 발행 미룬 기재부 '첩첩산중' - Reuters News
서울, 9월27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이달 초 달러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이하 외평채)의 발행을 전격 연기했던 기획재정부의 결정이 최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재부의 결정 이후 대내외 시장 여건이 오히려 악화되면서 발행 연기에 따른 실익이 오히려 줄어든 데다 한국물 가산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는 명분도 퇴색됐기 때문이다.
▲달러 외평채 발행 연기 급변한 시장..실리 잃은 기재부
27일 IB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주 주관사들과 미팅을 갖고 향후 달러 외평채 발행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기재부는 당초 이달 초 엔화와 달러 표시 외평채 발행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700억엔(약 5억 달러) 규모의 엔화 외평채만 발행했고 달러 외평채의 경우 연기를 택했다. 엔화채보다 오히려 달러채 발행 여건이 우호적이라는 시장의 평가에도 기재부는 엔화 외평채만 발행하는 강수를 뒀다.
시장에선 당시 기재부가 달러 외평채의 절대금리 수준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미국 국채 대비 스프레드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불만을 가지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채권 절대금리가 높은 건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굳이 그 이유 때문에 기재부가 달러 외평채 발행을 연기했는지 의문"이라며 "금리는 핑계고 스프레드가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 입장에선 시장이 어려울 때 구원투수로 등장해서 베이시스를 안정시킨다는 스토리텔링을 원했을 텐데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큼의 금리가 아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기재부의 결정 이후 대내외 채권시장 여건이 급변하면서 달러 외평채 발행 연기 결정을 두고 뒷말이 남고 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시장에선 금리의 방향성에 대해 낙관론이 우세했다. 유럽을 위시해 대다수 나라들의 통화긴축 사이클이 이미 종료된 가운데 미국 역시 최대 한 번 정도의 추가 정책금리 인상만 남은 상황인 만큼 시장금리 역시 상승보다 하락 쪽으로 방향을 잡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달 정책회의때 올해 추가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이어 점도표를 통해 내년 기준금리 전망치도 4.6%에서 5.1%로 상향 조정하는 등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매파적 스탠스를 보이면서 분위기가 빠르게 변했다.
내년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정적자 증가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과 중국 등 미국 국채 투자자의 이탈 가능성, 헤지펀드의 과도한 레버리지에 대한 우려가 미국 국채시장을 압박했다. 결국 이달 초 4%대 초반에서 움직이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4.5%를 뚫고 고공행진 중이다.
고금리 장기화 전망과 함께 경기부진 전망이 강화되면서 대내외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니 외평채 가산금리 전망도 오히려 악화됐다.
▲한국물 벤치마크 명분도 놓쳐..달러 외평채 발행 의구심도 커져
달러 외평채 발행 연기 결정으로 실리만 잃은 건 아니다.
통상 외평채가 발행되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좋은 은행들이 다음 타자로 나서 투자자들의 평가를 받았고, 이후부터 다른 기업들의 발행이 줄줄이 이어지곤 했다. 한국물 가산금리의 벤치마크의 역할을 하는 외평채가 발행시장에서 흥행을 하면 다른 국내 기관들의 가산금리에도 후광효과를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러 외평채가 기준점을 잡아주지 않으면서 9월 들어 외화채 발행에 나선 국내 기관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최근 3년 만에 공모 한국물 발행에 나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당초 목표했던 5년이 아니라 2년물로 발행해야 했던 배경으로 외평채의 벤치마크 역할 부재를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재부가 추석 연휴 이후 다시 준비에 들어간다고 해도 주요 투자자들의 운용북이 닫히는 11월을 앞두고 부랴부랴 외평채가 발행된다면 벤치마크 제공이라는 명분을 달성하기에 너무 늦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재부가 이미 공표한 달러 외평채 발행을 취소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나쁜 신호를 줄 수 있어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계은행의 트레이딩헤드는 "기재부가 11월에 외평채를 발행하는 건 말이 안되고 한다면 추석 연휴 끝나고 일정을 띄운 후 1,2주 안에 진행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다만 이 시점에 하는 건 한국물 벤치마크로서 큰 의미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재부가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면 굳이 외평채를 발행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며 "다만 그렇게 되면 신뢰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의 한 발행담당자는 "최근 신규 발행 프리미엄(New Issue Premium)이 크게 오르고 있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글로벌 채권투자자들이 굉장히 보수적인 스탠스를 보이고 있는데 뭔가 충격에 대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새같은 시장에선 필요할 때는 금리를 조금 더 주더라도 꼭 찍는 게 정답인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