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외평기금으로 세수 부족 메운다는 정부..연말 자금시장 '태풍의 눈' 되나 - Reuters News
서울, 9월4일 (로이터) - 정부가 대규모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을 끌어다 쓰기로 결정하면서 향후 자금시장에 미칠 파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채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역대급 세수 결손 사태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결국 자금시장의 유동성을 회수하는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외평기금 일반회계 전용, 환율·세수 두 마리 토끼 잡기
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제출된 기금운용계획안에 외국환평형기금채 20조 원을 조기 상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는 과정에서 쌓인 원화를 공공자금관리기금에 넘기고 이를 정부가 일반회계로 전용하겠다는 계산이다.
외평기금은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기금이며 공자기금은 전체 기금의 여윳돈을 통합 관리한다. 국회 의결이 필요한 예산과 달리 기금은 지출액의 20% 내에서 정부의 뜻대로 편성할 수 있다.
외평기금 여유자금 중 일부를 일반회계로 전용한다는 건 적자국채를 크게 늘리지 않고 세수 부족에 대응하겠다는 재정 당국의 고육지책으로 시장에서도 일정 부분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A외국계은행 대표는 "외평기금의 평균 수익률을 보면 달러/원 환율이 낮을 때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산 게 굉장히 많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그걸 실현하면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라며 "정부는 그 여유자금으로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계획일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외평기금이 달러를 사야 할 때는 기존 보유금으로 하거나 모자라면 한은에 동조 개입을 요청하면 될 것"며 "외평기금을 환율안정과 세수부족 안전판으로 동시에 활용한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돌고 돌아 자금시장에 영향..크레딧 스프레드 확대 가능성
하지만 이같은 정부 방침은 변칙 재정 운용의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나 외환시장 개입의 여력을 줄여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 외에 당장 자금시장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장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따른 국채 수급 부담 증가 요인은 사라졌지만, 결국 시중의 채권 매수 여력을 줄여 시장금리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외평기금 여유자금도 어딘가 금고에 따로 떼어놓은 게 아니라 시장에 풀려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연기금 투자풀로 지정된 삼성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뿐 아니라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한국증권금융 등이 관련 자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물론 정부가 한 번에 20조원을 시중에서 회수해 지출을 집행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B은행 수탁부장은 "정부가 외평기금 계정에 있는 걸 공자기금 계정으로 옮긴 후에 그걸 집행해야 할 때마다 회수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운용계좌에서 자금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마찰적 금리 상승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20조원이 한꺼번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며 정부가 자금을 집행할 때마다 서서히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채발행은 더 늘지 않겠지만 시중 자금은 빠지게 돼 결과적으로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연말 자금시장의 사정이다.
올해 연말 대규모 고금리 예금의 만기 도래와 함께 급격한 자금 이동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최근 은행채 발행량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채 발행이 쏟아지며 시중 자금이 말리는 시점에 정부 자금마저 시중에서 회수되면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은행 자금부장은 "연말 예금 만기 문제와 관련해 유의해서 보고 있다"며 "증시 움직임이 관건인데 예금 만기가 집중되는 시점에 증시가 좋을 경우 자금이 급격히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D은행 자금부장은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벌써 은행채 발행 레이싱이 시작된 모습"이라며 "정부 세수 부족분이 연말까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면 결국 외평기금 회수는 시차를 두고 4분기 중에 이뤄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조원을 작다고 하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연말 시장과 맞물려서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라며 "당장 자금이 빠질 것이라고 본 기관들이 1년짜리 채권을 사지 않고 관망세로 도는데 은행채는 계속 발행이 이뤄지는 그림이라면 결론은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