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하반기 신용시장 대회전 앞두고 대출제도 개편한 한은.."모든 길은 부동산 PF로" - Reute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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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7월27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 대한 신속한 유동성 지원, 시중은행 자금융통의 탄력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한국은행의 대출제도 개편안은 금융당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관리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져가는 시점에 발표됐다.
최근 부동산 가격의 하락세는 멈췄지만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면 PF 사업장이 집중돼 있는 비수도권, 비주택수익형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는 미진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 기관들의 자금 사정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
여기에 이미 회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수십 여개 PF사업장의 청산이 여러 요인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투자심리 개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연말 자금시장 혼란 반복과 지난해 학습효과
관건은 연말로 다가가면서 전반적인 자금 조달 압박이 커진다는 점이다.
예금 만기가 집중되는 연말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악화와 함께 만기 자금의 재예치를 확신할 수 없는 은행들이 자금 조달 경쟁을 벌여왔다. 매년 10월과 11월경 단기자금시장의 혼란이 반복된 건 이 때문이다.
예금 수신기관간 자금 조달 경쟁이 격화되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제2금융권의 조달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부동산 PF 부문 손실 규모가 큰 기관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큰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와 맞물린 은행채 대란의 학습효과도 남아 있다 보니 올해에도 경계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 은행 자금 여력 확보로 안전판 마련
한은이 당초 이달까지만 한시 적격담보로 인정하기로 했던 9개 공공기관 발행채와 은행채,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지방채, 우량 회사채 등 기타 시장성 증권을 상시 적격담보로 인정하기로 한 건 은행권의 자금 운용 여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장 직접적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푸는 건 아니지만 적격담보에 포함돼 있는 통안채를 은행채로, 은행채를 AA 회사채로 교체할 수 있게 됐다는 심리적 안전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채권의 유통 속도를 높여 실질적인 유동성 개선 효과를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이 경우 전반적인 은행의 자금 운용 여력이 확대되면서 하반기 조달 비용 상승 가능성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상시 적격담보증권에 우량 회사채까지 포함시킨 건 시장 안정에 대한 한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일 수 있다.
▲부동산 PF 사태 재발생시 한은 등판 시그널
여기에 한은은 상호저축은행과 신협, 농협,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중앙회에 자금 조달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한은법 제80조에 근거해 유동성 지원 여부를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한은의 입장이 뭔가 바뀐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게 함정이다.
한은법 80조에 따르면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크게 위축되는 등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한은이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 있다. 이번 새마을금고 사태때 한은 지원이 없었던 건 시중은행들을 통한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은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중앙회에 대한 유동성 지원 가능 여부를 선언적으로 발표한 건 결국 투자심리 개선과 시장 안전판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적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향후 부동산 PF 사태가 재발했을 때 한은이 확실히 등판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히는 부분이다.
▲단기자금시장 변동성 축소 초점 맞춘 자금조정대출금리 인하
이날 한은 발표 중에 가장 뜬금없는 부분은 아마도 은행에 대한 자금조정대출 금리 인하 부분일 것이다.
이날 금통위는 현재 기준금리 대비 100bp 높은 자금조정대출 적용금리를 기준금리보다 50bp 높은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시중은행들에 큰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현재 한은은 은행의 필요 지준이 파악되면 지준 공급 규모를 자체적으로 전망한 후 통안채 발행과 RP, 통안계정입찰 등을 통해 지준을 관리해 왔다. 은행들이 지준 자금을 운용할 때 최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고, 지준마감일을 앞두고 필요지준보다 지준 공급이 크게 부족할 경우에는 RP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주면서 시장 안정에 주력했다.
자금조정대출은 지준판을 잘못 관리한 은행이 받는 사실상의 페널티(벌칙)다. 하지만 단기자금시장이 급격히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은이 지준 마감 직전에 개별 은행의 자금 부족을 대부분 막아줬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자금조정대출 금리를 낮춘 건 일정 부분 단기자금시장의 변동성 제어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 지난 5월처럼 지준 마감을 앞두고 일부 은행의 자금이 말리며 레포금리가 급등하는 시점엔 자금조정대출금리가 변동폭에 캡을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입장에선 레포시장의 자금 조달이 꼬이는 상황에서 부동산 PF 등 신용 이벤트가 터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여유자금을 자금조정예금에 넣기보다 가급적 운용하도록 유도하려는 목적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연말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당국
지난 6월, 금융당국은 당시까지 92.5% 수준이었던 은행 LCR을 7월부터 95%로 2.5%p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현재 70% 수준인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제공비율을 올해 초 결정한 대로 8월에 80%로 상향하기로 하고 이미 은행권에 통보한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멈추고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슈가 되면서 6월까지만 해도 금융·통화 정책당국의 초점이 규제완화 정상화에 맞춰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부동산 PF가 여전히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가연성을 가진 이슈라는 사실이 최근 들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지원으로 여러 사업장의 생명이 6개월씩 연장되고는 있지만 부동산 PF 문제를 털어내기 전에 금융시장의 정상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시장의 어딘가가 부러지기 전에 금융, 통화당국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