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공·사기업 가리지 않는 부채스왑 연막..버린 말 '한전' 등장에 복잡해진 계산식 - Reuters News
서울, 7월1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외화채권을 발행할 때 부채스왑 비딩 시점을 예고없이 늦춤으로써 헤지비용을 줄이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사기업뿐 아니라 공기업까지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부채스왑 시점을 늦춘 게 오히려 더 큰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보니 발행사의 트레이더화 경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늘고 있다.
▲부채스왑 연막 작전, 사기업 넘어 공기업까지 확산
스왑시장에 따르면 이번주에 외화채권을 발행한 두산에너빌리티와 한국수력원자력 모두 부채스왑을 하지 않았다. 주초에 3억달러 규모 달러 표시 3년만기 그린본드를 발행한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스왑뱅크들과 미리 협의해 부채스왑 일정을 며칠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두산 에너빌리티에 이어 5억달러 규모 5년 만기 달러 표시 그린본드를 발행한 한수원의 경우 11일 국내시장 마감 이후 부채스왑 비딩을 갑작스럽게 취소한 경우다. 당일 대내외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한 반면 통화스왑(CRS) 금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아 조달 여건이 나빠졌다는 평가를 자체적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발행사들의 외화채 발행이 확정되면 스왑뱅크들이 부채스왑 플로우를 예상해 미리 비드를 내놓는 경우가 많아 CRS 금리 상승폭이 커지곤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발행사들이 이같은 시장의 선반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부채스왑 일정 등을 임의로 조정해 '연막' 작전을 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5월 초 9억 달러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한 SK온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6개의 은행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부채스왑을 하는 변칙 헤지를 선보였다. GS칼텍스의 경우 부채스왑 비용을 이유로 예정했던 달러화 채권 발행을 아예 연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같은 부채스왑 연막작전이 무조건 조달비용 감소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달러 오버나잇인덱스(OIS)가 원화채권 금리보다 크게 하락할 경우 조달비용은 오히려 늘어가기도 한다. 헤지 시점을 조정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그만큼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때문에 사기업과는 달리 공기업의 경우 과도한 헤지 리스크를 들고 가는 것보다는 외화채 발행과 동시에 부채스왑을 나서는 게 관례였는데 이번에 그것마저 깨진 것이다.
▲'발행사의 트레이더화' 비용 지적도..크로스 시장, 한전 등판 가능성에 '긴장'
다만 이번에 부채스왑을 연기한 한수원의 사정은 딱히 좋지 않다.
부채스왑 연기 이후 달러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오히려 조달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원화채권 금리도 하락하긴 했지만 달러 금리 낙폭이 더 큰 상황이다. 좁은 박스권에 갇힌 국내 채권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단기간에 사정에 크게 개선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시장참가자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한국전력공사가 이달 말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채권 발행을 준비하면서 계산식이 복잡해졌다. 한전은 3년, 5년, 10년 테너에서 모두 발행을 타진하고 있다.
한전의 경우 지난 2월에 예정했던 외화채 발행을 연기했고 3월부터는 거의 매주 시장 상황을 태핑하고 있다 보니 현재 업계에서 거의 '버린 말' 취급을 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면서 8월엔 발행시장의 문이 닫힐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9월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한전이 일정을 더 미루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전 대기물량까지 감안하면 한수원이 외화채 발행 당시보다 좋은 가격에 헤지를 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LG화학이 다음주에 외화채권 발행을 하면서 스왑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스왑뱅크들의 부담은 다소 줄어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A은행 스왑딜러는 "원래 트레이더의 역할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책임지는 것"이라며 "발행사들이 스스로 트레이더가 되면서 그 리스크 값을 치르지 않으려고 하는데 시장 상황의 역동성을 감안하면 매번 안 치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기업이 이런 식으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게 놀랍다"며 "한수원의 부채스왑이 지연된 이후 대내외 금리가 급락한 상황에도 크로스 금리가 빠지지 않았다는 건 비드가 강한 데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은행 스왑딜러는 "자산스왑이 장기 테너로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크로스 커브가 눌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일단 시장의 시선은 한전 물량으로 맞춰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C은행 스왑딜러는 "한수원은 원화 금리가 더 떨어질 것 같다고 부채스왑을 미뤘는데 달러 금리가 더 떨어지면서 조달 사정은 더 안 좋아졌다"며 "국내 금리는 하단이 막혔고 달러 금리는 아직 추가 하락 룸이 있는데다 한전 물량까지 대기하고 있어 부담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자산스왑 하는 쪽에서도 물량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금리 방향을 확신할 수는 없다"며 "이전과 달리 한전이 이번엔 정말 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 시장의 초점은 부채스왑에 좀 더 맞춰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