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한은의 RP 매입 고민..단기금리 영향력 제고VS관치 논란 - Reuters News
서울, 6월1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뿐 아니라 공급이 가능하도록 공개시장운영 제도와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어떤 후속조치가 이뤄질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RP매각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공개시장운영에 RP 매입 방식을 포함시켜 단기금리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하는 게 검토되고 있지만, 한은이 단기금리 수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개입에 나설 경우 은행의 역할이 제한되며 사실상 관치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탄력적 'RP 매입' 고민하는 한은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열린 '한은 창립 73주년 기념식'에서 공개시장운영제도 개선과 관련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 총재는 "이제까지는 기조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국외부문으로부터 대규모 유동성이 계속 공급되어 왔기 때문에 한은의 유동성 관리 또한 이를 흡수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운용되어 왔지만 대내외 경제구조가 달라지면서 경상수지 기조는 물론 적정 유동성 규모 등이 변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따라서 유동성 조절도 흡수일변도에서 벗어나 평상시에도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나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발언의 핵심은 평상시에도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데 있다.
현재 공개시장운영의 기본 수단인 통안채 발행, RP, 통화안정계정 입찰의 경우 기본적으로 유동성 흡수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수시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을 확충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총재가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최근 단기자금시장을 둘러싼 혼란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안채 3개월 등 단기금리가 기준금리를 크게 하회한 지난 4월 이 총재는 단기금리 하락으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저해되고 있다며 경고를 이어갔다. 이후 한은 실무진은 5월 통안채 3개월물 발행량을 대폭 늘리고 비정례로 28일물 통안채를 발행하며 유동성 흡수 조치를 실행했다.
하지만 한은의 스탠스 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못한 일부 은행들이 급하게 자금 확보에 나서는 등 자금 운용에 구멍이 났음이 드러났고 조달 금리는 크게 올랐다. 지준마감일을 앞두고 국고채 기준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가 4%대로 치솟고 일부 증권사가 자금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 총재 입장에선 단기금리가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하회할 경우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해야겠지만, 반대로 너무 크게 올랐을 때도 언제든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물론 이는 현재 한은의 공개시장운영 방침과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한은은 그동안 은행의 필요 지준이 파악되면 지준 공급 규모를 자체적으로 전망한 후 통안채 발행과 RP, 통안계정입찰 등을 통해 지준을 관리해 왔다. 은행들이 지준 자금을 운용할 때 최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고, 지준마감일을 앞두고 필요지준보다 지준 공급이 크게 부족할 경우에만 RP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주면서 시장 안정에 주력했다. 물론 지준판을 잘못 관리한 은행이 자금조정대출을 활용하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 총재의 언급대로라면 앞으로는 단기금리가 기준금리를 크게 상회할 경우 지준마감일이 임박하지 않았더라도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준마감일 직전 등 특수 상황에서만 활용됐던 RP 매입이 언제든 RP 매각과 병행해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까지 공개시장운영의 기본 방향 하나가 자금운용의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것이었다"며 "다만 이처럼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주력하는 게 통화정책의 유효성에 긍정적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RP를 거의 매각만 하고 있는데 매도 일변도 공개시장운영이 적절한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통화정책 유효성 확보에 더 긍정적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듯하다"며 "오래된 이슈인데 당장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은 원칙만 확실하면 문제없다VS관치 복귀
시장에선 복합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은이 그동안의 공개시장운영 방침을 유지하면서 이번처럼 단기금리의 큰 변화가 나타나는 시점에 원칙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단기금리가 기준금리보다 과도하게 낮아지거나 올라갈 때 한은의 스탠스가 일관적이기만 하다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A은행 자금운용부장은 "지준마감일이 15일 정도 남았는데 RP금리가 급등하고 단기금리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보이면 한은이 하루짜리라도 RP 매입을 통해 시그널을 주는 건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며 "어차피 마감일에 자금이 맞춰진다고 해도 시장이 오버하지 않도록 한은이 밴드를 확실히 정해주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이 기준금리 대비 어느 수준에서 반응한다는 시그널만 확실히 해주면 될 것"이라며 "다만 어떤 식으로든 지준을 맞춰주겠다는 뉘앙스는 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은이 단기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지준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준마감일 전에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과 흡수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개입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도 지난한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은의 탄력적인 RP 매입이 '지준은 우리가 맞춰줄 테니 은행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시그널로 비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금리가 오르거나 떨어질 때마다 한은의 자동개입이 나온다는 인식이 결국 이전의 '금리 관치' 시대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B은행 자금운용역은 "유동성이 부족해서 한은이 공급을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됐을 때 해야할지가 분명해야 한다"며 "단기금리도 종류가 다양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임도 천차만별인데 한은이 분명한 기준을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C은행 자금부장은 "예전에 한은이 시장을 관리할 때는 지도편달만 하면 됐고 은행들이 할 일이 없었다"며 "한은 시장국이 트레이더처럼 움직이면서 금리를 관리하면 결국 은행에서 책임을 가지고 자금을 운용할 필요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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