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찻잔속 태풍' 전기요금 인상..한은 물가 전망 하향 조정 가능성 - Reuters News
서울, 5월15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정부와 여당이 논란 끝에 전기·가스요금을 인상했지만 국민 여론을 의식해 소폭 조정하는 데 그쳤다.
현재까지 전기·가스요금 인상폭이 당초 예상을 크게 하회하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 하락세 지속에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만큼 한국은행이 이달 수정경제전망 발표때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전기요금 인상폭, 지난해 수준 그칠 수도..한은, 물가 전망 하향 가능성
정부·여당은 15일 당정협의에서 전기·가스요금 인상 방안을 확정했다.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은 오는 16일부터 나란히 5.3%씩 인상된다.
전기요금은 지난 1분기 13.1원 인상된 데 이어 2분기에 8원 추가로 인상됐다. 다만 2분기 인상폭은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상반기 전기요금 인상폭은 지난해 인상폭(㎾h당 19.3원) 수준이 된다. 도시가스 요금은 지난해 10월 MJ(메가줄)당 2.70원 오른 데 이어 이번에 1.04원 추가로 인상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가스요금의 연내 추가인상 여부에 대해 "현재로서는 예단하고 있지 않다"며 "글로벌 에너지 가격 동향, 한전·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재무상황 및 개선 정도와 이들의 자구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겠다"고 했다.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은 셈이다.
다만 하반기부터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따른 정치 일정 때문에 국민생활과 밀접히 연계되는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올해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현재 수준에서 마무리되면 당초 알려진 적정 수준을 크게 하회하게 된다. 산자부가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한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올해 기준 연료비를 포함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h당 51.6원에 달했다.
지난해 인상폭(㎾h당 19.3원)의 2.7배다.
한은 역시 올해 전기요금이 지난해보다 큰 폭 인상될 것으로 보고 물가 전망을 잡았던 만큼 현 시점에선 일정 부분 재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구나 지난 2월 경제전망 발표 당시 84달러로 예상했던 두바이유 가격이 현재 74달러 수준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다. 지난달 OPEC+의 깜짝 감산 발표로 반등하는 듯하던 두바이유 가격은 글로벌 경기둔화 전망 속에 다시 저점을 낮춰가고 있다.
지난해 5월 두바이유 가격이 120달러에 육박했던 것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둔화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유가 수준이 유지된다면 전기·가스 요금 인상분이 반영된다고 해도 5월 물가상승률은 3%대 초반, 6월 물가상승률은 2%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서 제시되고 있다.
4월 소비자물가가 작년 같은 달보다 3.7% 올라 2021년 2월(3.7%) 이후 가장 낮은 상승폭을 기록한 것으로 발표된 지난 2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김웅 한은 부총재보 역시 "소비자물가가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밝혔다. 당분간 가파른 물가하락세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 2월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을 4.0%, 하반기 물가상승률을 3.1%로 예상했던 한은이 이달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할 때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 근원 물가에 방점 찍을 한은..시장 "물가 하락 트렌드 지속" 전망
관건은 근원 물가다.
한은은 지난달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올해 근원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소폭 상향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외식비, 가공식품 가격 등이 근원물가의 하락 속도를 제한할 것이라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외식 물가는 4월에만 지난해 같은 달보다 7.6% 올랐는데 소비자물가 기여도가 0.98%p로 세부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큰 상황이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 속도가 한은 예상만큼 빠르지 않지만, 전반적인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외식비 등의 하방 압력이 크지 않다고 한은은 평가하고 있다.
관건은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따른 전이 효과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은 식당이나 카페 등 외식 부분부터 숙박업, 제조업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만 전기·가스 요금 인상폭이 당초 전망보다 줄어듦에 따라 하반기 근원물가 상방 압력도 일정 부분 제한될 여지는 있다.
시장참가자들은 한은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얼마나 하향 조정할지, 근원 물가 전망치를 과연 상향 조정할 수 있느냐가 이달 경제전망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국내은행 운용부장은 "전기, 가스요금 인상에 따른 영향이나 중국 리오프닝 등 하반기 물가의 상방 압력 재료들이 일정 부분 후퇴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한은 입장에선 소비자물가보다는 근원물가의 더딘 하락 속도에 방점을 찍으며 시장의 정책기조 변화 기대를 통제하려 할 듯하다"고 말했다.
B외국계은행 트레이딩헤드는 "5월과 6월 물가 하락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한은의 판단이 중요하다"며 "한은이 근원 물가의 상향 조정 가능성을 이미 언급한 이상 방향은 유지하겠지만, 소비자물가 하락 속도가 워낙 빨라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최대 이슈라고 봤던 공공요금 인상이 예상만큼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경기둔화 등 물가 하방 재료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며 "정부가 물가를 일정 부분 관리하려는 경향이 하반기로 갈수록 강해질 수 있다는 점도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