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美 긴축 중단 시그널+대내외 신용 우려..국채선물 헤지 늘린 증권사 '진퇴양난' - Reuters News
서울, 5월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14개월간 이어온 통화긴축 기조의 중단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최근까지 국채선물 시장을 통해 헤지를 크게 늘려온 증권사들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리스크를 상당 부분 덜어낸 상황인 데다 경기둔화, 물가 하향 안정화, 금융불안이 현재 시장의 지배적인 테마로 자리잡은 만큼 단기적으로 숏커버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조달금리 급등+FOMC 부담에 헤지 늘린 증권사 '진퇴양난'
채권업계에 따르면 3일 종가 기준으로 증권사는 지난 5거래일동안 3년 선물을 1만3390계약, 10년 선물을 1만7176계약 순매도했다. 현재 증권사의 3년 선물 누적 순매도 규모는 15만 계약 이상, 10년 선물 누적 순매도 규모는 6만 계약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3년 선물을 2만2690계약, 10년 선물을 1만8418계약 순매수한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과 증권사가 서로의 물량을 받고 던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증권사가 헤지를 늘린 데는 조달금리 상승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이후 '단기금리 과도' 발언을 연달아 던진 후 한은 실무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당초 3.25% 내외에서 움직이던 레포금리가 지난주 3.5% 수준으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레포금리가 3.5%까지 올라오니 1개월물부터 3년물까지 3.2%대에 근접해 있던 국고채권 금리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 이번주 초에 국고채 30년물 입찰까지 예정돼 있었던 데다 5월 FOMC 회의가 금리 상승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적지 않아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헤지를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5월에만 은행채 만기가 23조1300억원에 달하는 등 수급 부담이 커진 것도 증권사들이 헤지를 늘린 이유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FOMC 회의 결과는 '도비시'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한 연준은 성명에서 "충분히 제약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달성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적인 정책 강화가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가이던스를 삭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를 일축하긴 했지만 긴축 종료 시그널을 준 시점에 시장의 인하 기대감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진단이다.
연준의 물가 전망이 한, 두달 만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긴축 사이클은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시장참가자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파산한 데 이어 팩웨스트 등 중소은행의 추가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보니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헤지 줄이는 것 외에 할 만한 게 없다'
증권사 입장에선 역캐리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기준금리 대비 스프레드가 벌어져 잇는 크레딧물 포지션 확대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형 크레딧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으로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는 시점에 크레딧 리스크가 부각됐다면 결국 국채 등 무위험자산에 가중치를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크레딧 스프레드가 국공채에 비해 캐리 유인이 있긴 하지만 신용 이벤트 우려를 감수할 정도로 매력적인 수준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현재 증권사 포지션이 중립 롱이든, 숏이든 헤지 규모를 다소 줄여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사 채권딜러는 "이번 FOMC 회의를 잠재적 기조 전환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도 미국 부담은 많이 줄어든 셈"이라며 "환율 때문에 당장 기준금리를 인하할 상황은 아니지만 유가 급락과 점진적인 소비 둔화, 가계와 기업 대출 디폴트 증가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결국 금리는 하락하는 쪽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를 크게 상회한 수준에서 오래 지속된다고 하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부서지는 곳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크레딧 포지션을 늘려가는 건 위험하다"며 "결국 국채가 가장 좋아보이는 상황인데 3.2%에 자꾸 막히고 있고 증권사들도 헤지를 줄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B증권사 채권본부장은 "지난 2월에 다섯 명의 금통위원이 최종금리로 3.75%까지 열어두자면서 기준금리는 만장일치로 동결한 것과 이번 FOMC 회의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 입장에선 이제 4월부터 10월까지 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경기도 안 좋은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총알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니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소비지표가 흔들리거나 근원 인플레이션까지 하향 안정화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진짜 금리인하를 선반영하면서 국내 시장은 3%를 깨러 갈 것"이라며 "다만 크레딧물의 경우 1년물 사는 게 나은데도 3개월물을 선호하는 건 향후 도래할 수 있는 크레딧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현물 쪽에선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결국 헤지를 줄이는 것밖에 없다"며 "다만 지금부터 열어놓고 가는 게 맞나 싶어서 여기저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외국계은행 트레이딩헤드는 "이번 FOMC 회의는 애초부터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가 없는 이벤트였다"며 "증권사들은 3.35%부터 숏을 쳐왔는데 이제 미국 금리인상이 일단락됐으니 더 깊게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들 입장에선 여기서 숏커버를 하지 않고 좀 버티다가 살짝이라도 금리가 반등할 때 일정 부분 포지션을 덜어내고 싶을 것"이라며 "선물이 고평가돼 있지만 모든 바스켓 채권이 역캐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선물이 쌀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