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韓 물가, 전망 경로 위냐 아래냐..금통위 앞두고 고민 커지는 한은 - Reuters News
서울, 4월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한 주 앞두고 국내 물가 경로를 전망해야 하는 한국은행 실무진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OPEC+의 깜짝 감산 발표와 정부의 전기·가스 요금 인상 결정 잠정 중단에 따른 불확실성이 워낙 크다 보니 물가 경로의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이전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4월 금통위, 국내 물가 경로 판단 중요할 듯
통계청이 4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56(2020=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상승했다. 지난해 3월(4.1%) 이후 최저 상승 폭이며 올해 2월 상승률(4.8%)보다 0.6%p 하락한 수치다.
전체 물가지수 하락은 석유류가 주도했다. 석유류는 1년 전보다 14.2% 하락했다. 2월(-1.1%)보다 낙폭이 커지면서 2020년 11월(-14.9%)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휘발유(-17.5%)와 경유(-15.0%), 자동차용LPG(-8.8%) 등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만 가공식품(9.1%) 물가 상승세는 여전했고 전기·가스·수도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8.4%로 지난 2월과 같아 2010년 통계작성 이후 최고 수준을 이어갔다.
시장참가자들은 3월 물가가 4월 금통위 회의 전 가장 큰 의미를 가진 국내 지표로 보고 있다.
글로벌 은행 위기 확산 우려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긴축 정책을 5월경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통화정책 경로는 결국 물가의 향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금통위 회의 당시 기준금리 동결 주장을 편 대다수 금통위원들도 향후 물가 경로가 한은의 전망에 부합하느냐가 통화정책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3월 물가지표를 바탕으로 한은이 새롭게 내놓을 향후 물가 경로 전망이 이달 금통위원들의 판단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2월보다 커진 물가 하방 리스크
최근까지의 흐름은 국내 물가가 한은의 예상 경로를 하회할 가능성을 높여 왔다.
한은은 지난 2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을 4.0%, 하반기 물가상승률을 3.1%로 예상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3월부터 유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하면서 3월 이후 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임을 감안한 숫자였다.
다만 한은이 2월 경제전망을 내놓던 시점에는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도 더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이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산 규모 200조원 규모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물가 전망 리스크 계산식이 달라졌을 일부 달라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은행의 자산건전성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출심사가 깐깐해지고 있는 만큼 향후 전반적인 신용 악화가 경기를 압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월보다 물가의 하방 리스크에 무게를 실어주는 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은행 위기 확산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한은의 당초 예상보다 급락한 것도 물가의 하방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었다.
▲ OPEC+ 감산·전기요금 인상 보류에 '반전의 반전'
하지만 금통위 회의를 한 주 정도 앞두고 OPEC+가 깜짝 감산을 발표하면서 계산식이 또 어긋났다. 지난 2일 OPEC+ 국가들은 5월부터 하루 116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한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이같은 발표 이후 3월중 78달러 수준에서 움직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84달러까지 급등했다.
OPEC+의 이번 결정이 향후 중국발 원유 수요 증가, 여름 휴가 시즌 수요와 맞물리면서 하반기 국제 원유가를 1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일부 기관은 이번 OPEC+의 감산 효과를 평가절하하는 등 유가 전망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한은 입장에선 지난 2월 84달러로 예상했던 두바이유 가격을 어느 방향으로 조정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올해 국내 물가 경로의 최대 변수로 여겨졌던 전기·가스 요금 인상폭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졌다. 당초 지난달 말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던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은 잠정 보류됐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여론 악화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한 여당이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규모를 감안할 때 전기, 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대해선 이견이 없는 상황이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인상폭은 당초 전망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한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올해 기준연료비를 포함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h당 51.6원으로 산정했다. 지난해 인상폭(㎾h당 19.3원)의 2.7배다.
한은은 지난 2월 경제전망을 하면서 올해 전기요금 인상폭이 지난해보다 크게 확대된다는 점을 기본으로 반영해 놓은 상태다. 금통위 회의 전까지 정부와 여당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면 한은의 물가 전망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한은 관계자들 "불확실성 커..최대한 지켜본 후 판단"
한은 관계자들은 일단 금통위 회의 직전까지 입수 가능한 최대한의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한 후 물가 경로에 대한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고위 관계자는 "금통위 회의때 위원들에게 숫자를 제시할 때는 입수가능한 최신 자료를 업데이트해 기존 전망과 비교해봐야 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때는 레인지로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유가의 경우 전망 레인지가 워낙 크게 차이나는 상황"이라며 "일단 최대한 상황을 지켜본 후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지금 물가 경로는 위아래로 다 열려 있다"며 "금융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 애매한데 유가나 공공요금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급반등 요인이 없다면 물가 둔화 흐름은 지속되는 방향으로 보고 있다"며 "물가 하락 자체가 서비스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생각해야 하는데 결국 하락폭이 관건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