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전망)-한국 사례를 통해 예상해 본 연준의 정책 경로 - Reuters News
서울, 3월22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미국 정부가 사실상 모든 은행에 대한 예금보장 의지를 밝히며 신용위기 확산 저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가운데 국내 금리는 미국 국채금리 반등분을 반영하며 약세 출발할 전망이다. 다만 시장 기저에 여전한 불안심리와 미국 긴축 기조의 단축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밀릴 때마다 대기매수세가 유입되며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발표 하루 전에 강력한 시장 안정 의지를 표명했다. 옐런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국 은행연합회 연설을 통해 "은행 위기가 더 악화할 경우 예금에 대한 추가 보증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금융당국이 이미 예금의 전액 지급을 보증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외에도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이 나오면 지급 보증을 하겠다는 것이다.
옐런 장관은 "우리가 취한 조치는 특정 은행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게 아니다"라며 "더 광범위한 은행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밝혔다. 특정 은행의 문제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실상 모든 은행의 예금을 보증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SVB 은행 파산 직후만 해도 모든 은행의 예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던 옐런 장관이다. 이번 발언은 미국 정부가 현 상황의 엄중함을 인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위기 전염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장은 환호했다. 이번 은행 위기의 다음 희생자로 유력해 보였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는 30% 급등했고 다른 중소 지역은행 주가도 뒤따랐다.
시장에선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로 연준이 그나마 부담을 덜고 25bp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게 됐다는 분위기다. 도비시한 톤의 금리인상과 매파적 톤의 금리동결 사이에서 전자로 기울 여지가 커졌다는 것이다.
규모와 그 파장을 감안할 때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의 해법은 지난해 레고랜드에 대처한 국내 정책당국의 행보와 상당히 유사하다.
처음엔 시스템 리스크가 아니라고 했다가 부랴부랴 정책 대응에 나선 것부터가 그렇다. 국내 당국은 은행의 시중자금 독식만 막으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의 돈맥경화가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아니었다.
크레딧시장에 문제가 생기니 돈이 안 돌고 돈이 안 도니 시장참가자들이 악성자금을 털어내려 보유채권을 던지면서 위기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결국 당국은 한, 두 군데 둑을 막는 것보다 거의 모든 금융부문을 틀어쥐는 '사전 예방법'을 택했다.
미국 역시 지금은 은행 위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유동성이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전개다. 미국 정부로부터 예금지급을 보장받았다고 해서 은행들의 자구노력이 끝나는 게 아니다. 향후 은행 건전성에 대한 정부와 시장의 요구는 더 깐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중 전반의 자금줄이 조여지는 상황에서 코코본드든 자산유동화증권이든 문제점이 부각된 자산에 대한 정리 시도가 나타날 경우 또 정책 대응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코로나 위기 이후 완화적 통화정책의 전환부터 신용위기까지 미국이 한국을 몇 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쫓아오는 느낌이다. 한국이 사실상 1월에 마지막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긴축 기조 중단 시점이 다가온다고 예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누적된 금리인상이 원인으로 지목된 시장불안이 가시화된 이후 한국은 인플레이션에 방점을 찍은 통화정책과 크레딧시장 안정을 위한 전방위 대책을 병행해 일단 안정을 되찾았다. 미국이 한국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금리 경로 불확실성은 상당히 감소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긴축 정책의 급격한 중단보다는 신용위기 발생 시점에서 두어 달 정도 시차를 둔 출구전략, 통화정책과 무관하게 발표되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 팩키지의 출현 등을 예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수익률곡선상으로 스티프닝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채권시장은 이번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와 3월 국내물가 지표 발표 내용 이후 방향성이 더 분명해질 전망이다. 현재로선 시장이 밀릴 때마다 꾸준히 포지션을 채워나가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