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Clipping◆

(채권/전망)-늑대사냥의 생리 - Reuters News

폴라리스한 2023. 3. 14. 08:41
반응형

서울, 3월1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채권시장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국 중소은행 위기론과 하루동안 50bp 이상 하락한 미국 국채 2년물 수익률 등을 반영하며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미국에서 3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까지 나오는 등 통화정책 전망 지형에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어 오늘도 적극적인 매도 대응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조치로 상황이 마무리될 것으로 봤다면 정말 나이브한 인식이었다. 금융시장에서 한 번 무너진 신뢰의 둑을 다시 메우는 정말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깨트린 게 신뢰로 먹고 사는 은행이라면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나마 달러 발권력이 있는 미국이니 이 정도로 막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장은 예상대로 다음 타깃을 정해 무차별 공세를 펼쳤다. 13일(현지시간) 뉴욕장에서 '제2 SVB' 가능성이 제기된 퍼스트리퍼블릭은행과 웨스턴 얼라이언스, 팩웨스트 뱅코프는 이날 각각 62%, 47%, 21% 폭락했다.

1차 사냥이 마무리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시장의 자경단은 이제 문제가 될 만한 곳들에 현미경을 들이밀며 결백을 입증하라고 몰아댈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응징하게 된다.

흥국생명보험이 지난해 11월 5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권)을 조기상환(콜옵션)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늑대사냥이 시작되면 먼저 넘어지는 사람이 늑대가 되는 게 시장의 생리다.

달라진 금융환경도 위기의 전염효과를 키울 수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를 국내 금융시스템 위기로 키운 데는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포된 살생부가 큰 역할을 했다.

SVB가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 사실을 공표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신주 발행에 나서겠다고 밝힌 지 36시간 만에 파산한 것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빛의 속도로 퍼진 위기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분간 연방준비제도의 최대 과제는 무분별한 살생부 유포와 자기실현적 위기 확산을 막는 데 맞춰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연준에 대한 신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주에 통화긴축의 재가속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통해 50bp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었다. SVB가 빛의 속도로 파산하기 불과 며칠 전 일이다.

연준이 현재의 은행 위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금융시장참가자들에겐 더 큰 불안감이다.

중요한 건 연준이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 스텝만 잘못 디뎌도 모두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물가지표를 보고 연준이 50bp를 인상할지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더구나 신용창출의 핵심인 은행들이 지금 대차대조표 문제로 코너에 몰려 있다. 이제 대형은행이든 중소은행이든 대출을 깐깐하게 하면서 대차대조표 관리에 치중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은행발 위기론이 불거졌다는 점은 민간 부문을 통한 유동성 축소 효과가 커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연준이 굳이 나서서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필요는 사라졌다.

골드만삭스는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때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전망했고 노무라는 인하 전망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연준이 시장 컨센서스보다 정책금리를 한 번 더 인상하느냐 아니냐는 이제 큰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됐다.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미국 경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이제 시장의 관심은 사태 수습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연준이 앞으로 한 두차례 더 금리인상을 할 순 있겠지만 이제부턴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지 모를 금융불안 요인에 무게를 두면서 신중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채권투자자들 입장에선 당혹스럽게 빠른 전개다.


중요한 건 결국 이자율스왑(IRS) 등을 통해 이뤄진 가열찬 헤지가 얼마나 빨리 벗겨지느냐일 것이다.

2월의 가시밭길을 모두 감수하고 지난주 파월 발언 파고까지 견디며 롱을 지킨 곳이 아니라면 승자가 되기 어려운 전개다. 그나마 입찰에서 물량을 받은 곳들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듯하다.

국내 통화정책 전망 지형을 감안할 때 최근까지 이뤄진 금리 상승장에서 현물을 공격적으로 매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헤지의 상당 부분이 IRS 페이를 통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IRS 짧은 테너에서 헤지 포지션의 급격한 언와인딩이 불가피해 보이는 만큼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