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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방위 은행 마녀사냥과 금융당국이 지켜야 할 선 - Reuters

폴라리스한 2023. 2. 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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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월16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지난해 11월2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다양한 방안으로 은행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공정거래법상 이슈와 관련된 문제점을 제거하면서 은행들이 서로 은행채 등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금감원을 위시한 금융당국은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시장의 유동성 대란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개별은행의 자금운용에 직접 개입하며 사실상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돈줄 역할을 해야 할 은행들이 채권 발행 확대를 통해 시중자금의 '블랙홀'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은행별로 수 조원씩 은행채 만기가 돌아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금감원의 통제로 은행의 채권발행이 막히니 만기 순상환에 따른 추가 자금 조달 수요가 채워지지 못했다.

결국 발행시장을 통해 조달하지 못한 자금을 예금으로 충당하려다 보니 은행별로 유치 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예금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예금금리가 높아지면서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리자 '역머니 무브'를 우려한 금융당국은 은행에 "예금금리 경쟁을 자제하라"며 경고를 보냈다.

채권 조달 경로가 막힌 상황에서 연말까지 다가오니 진퇴양난이라는 은행의 읍소에 결국 금감원이 내놓은 해법이 은행채의 사모 발행이었다.

은행채 발행시장 참여자를 은행으로 한정하고 증권사 등 다른 기관들의 참여는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공모 발행이 아니니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제한할 수 있고, 은행들이 서로 채권을 사주니 만기 상환에 따른 차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사모 은행채를 적격담보로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이견이 빚어지면서 시도는 좌초됐다.

한은은 지난해 10월부터 한시적으로 은행 적격담보증권 대상을 은행채와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까지 확대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공개시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행한 공모 채권이 아닌 사모 형태의 은행채까지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포함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금융당국이 '나중에 문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다고 해서 사모간에 발행한 채권이 신용대출의 형태를 가진다는 사실이 부인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은이 적격담보증권을 지정하는 건 결국 결제 리스크를 막기 위해서기 때문이다. 은행에 디폴트가 발생했을 때 해당 담보를 즉시 유동화해서 신뢰에 기반을 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사정이 급하다고 대출 성격의 사모사채까지 적격담보로 인정해버리면 결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적격담보를 지정하는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정책이 선의에서 태동됐다고 해도 신용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할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식으로 집행되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은행 제도 이해 없이 진행되는 여론몰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6일 업무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은행권이 연간 수 십조 원대의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배경에는 과점 체제가 보장되는 특권적 지위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올해 '검사업무 운영계획'에서 최근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은행들의 상황을 '시장 변동성 확대에 편승한 불합리한 관행'으로 규정했다.

은행이 작년에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300~400%의 성과급을 지급한 데 이어 일부 명예퇴직자에게 10억원까지 지급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여론도 들끓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 돈잔치 대책 마련' 발언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고조됐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임원들에게 지시했다.

지난해 대출금리가 급등하는 과정에서 은행들이 예대금리차를 이용해 폭리를 취했고 그렇게 얻은 돈을 성과급 파티에 썼다는 게 현재 은행권에 쏟아진 비난의 핵심이다.

하지만 대출금리를 올린 건 일단 시중은행이 아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이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대출 좀 줄이려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게 시발점이다.

더 멀리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전세계적인 금융 주도 성장 정책이 불러온 후폭풍이다.

저금리로 특징지어지는 금융 주도 성장 시대의 핵심은 부동산 등 자산을 소유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간의 경제적 격차 확대였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아 자산을 늘림으로써 소득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다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라는 역풍을 맞고 말았다.


그래서 은행은 이 거품 형성과 붕괴 사이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예대금리차 확대를 통해 폭리를 누렸는가? 국내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시장 금리 상승에 따라 2020년 1.42%에서 2021년 1.45%, 2022년 1.63%(3분기)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올린 수익의 상당 부분은 요구불예금에서 비롯됐다는 단순 팩트를 무시해선 안된다. 대내외 증시가 급격히 조정을 받는 상황에서 유동자금의 입출금이 자유로운 요구불예금으로 몰리는 건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요구불예금 금리가 워낙 낮게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보니 시장금리가 올라갈 때 은행의 수익은 자연스럽게 불어난 셈이다.

예대금리차 확대에 따른 수익 증가분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2020년 1.78%p에서 2021년 1.81%p, 지난해 2.13%p(3분기)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예대마진에 근거한 수익 창출이 은행 비즈니스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예금 이자가 낮은 건 은행이 현금 보관 서비스와 함께 지급 결제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이고, 대출 이자가 높은 건 차입자가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위험 프리미엄을 붙이기 때문이다. 은행이 개인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상시 감시할 수 없는 상황에선 위험을 완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 그게 가산금리다.

은행의 고객들은 불경기 때 부실대출 확대에 따른 손실을 자신들이 감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경기가 불황에 빠지고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부실 대출이 늘어날 때 손실은 온전히 은행의 몫이다.

만약 은행의 대출 자산이 부실화해 대손 비용이 경상 운영비를 차감한 영업이익 수준을 초과하면 자본금이 잠식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용이 위협받게 되고 특정 은행의 건전성 위험 신호는 해당 국가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기도 하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시점에 은행이 수익을 불리고 체력을 키우는 걸 고까운 시선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이뤄진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 상환유예 조치가 지속적으로 이연 돼왔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그나마 경기가 좋았던 때 이뤄졌던 것 중 부실 가능성이 큰 대출의 규모가 향후 경기 침체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모든 게 은행 탓' 금융당국, 무엇을 노리나?

은행이 고객 자산을 이용해 과도한 위험을 추구한다면 이는 문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음에도 은행의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가 적절히 통제되고 있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출금리 올라가는 걸 은행의 탓으로 몰아가는 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국내에 은행 숫자가 적어서 대출금리가 높다는 식의 논리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대출금리 상승과 은행별로 원래부터 존재했던 기준에 따른 성과급 지급이 어떻게 국내 은행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필요성으로 이어지는지 그 논리의 연결고리가 정말 궁금하다.

은행에 일정 부분 공공재 성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은행들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예금을 수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데 불특정 다수에게서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특권이다.

다만 그동안에도 국내 금융시장에 문제만 터졌다 하면 구원투수로 등장해 공공재 역할을 해왔던 게 은행들이다. 시중은행들이 갑자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수익률 기계로 변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속내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