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진짜 시험대 선 한은 조사국과 '한국식 포워드 가이던스' - Reuters
(칼럼)-진짜 시험대 선 한은 조사국과 '한국식 포워드 가이던스' - Reuters
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11월2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한국식 포워드 가이던스'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긴축 가속화 전망으로 달러/원 환율이 급등한 지난 10월 급하게 올해 두 번째 빅 스텝을 단행한 후폭풍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워낙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포워드 가이던스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지만, 시장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이 총재가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5%대 물가 상승 전망과 또 뒤틀린 포워드 가이던스
하지만 11월 금통위 결과를 복기해 보면 포워드 가이던스의 한계가 또 한 번 드러났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는 지난 7월 이후 네 번의 금통위에서 모두 조금씩 틀어졌다.
7월에 이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6%를 넘는 상황에선 경기보다 물가에 초점을 맞추는 게 거시경제 운용에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 8월엔 향후 국내 경제의 성장 경로가 전망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5%대 물가가 지속된다면 현재의 기조(베이비 스텝)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정책 초점을 물가 정점 여부에서 물가 하락 속도로 슬그머니 옮긴 것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이 6%대에서 5%대로 낮아지고 국내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던 10월에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하면서 이 총재는 '원래 연준의 통화정책이 기본 전제였다'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5%대 지속 여부가 향후 통화정책 경로를 결정할 것이라는 쪽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꺾은 바 있다.
11월 초에도 한은은 내년 1분기까지 물가 상승률 5%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고수했다.
하지만 대내외 여건은 급변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일찍 5%대에서 하향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11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 역시 11월과 12월 물가 상승률이 크게 낮아져 4%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 총재는 기저효과 때문에 연말까지 물가가 예외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며 "수준이 아니라 기조를 봐달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부터 9월까지 2%대 ?價卉衫駙【?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10월에 3.2%로 급등한 후 11월에 3.8%로 추가 상승했다.
지난해 10월 물가의 경우 정부의 통신비 지원에 따른 일회성 요인이 크게 반영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저효과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저효과를 반영하고도 이달 초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내년 1분기까지 5%대 물가 상승률이 예상된다"고 했던 게 한은이고 이 전망이 포워드 가이던스의 근간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은은 겨울로 다가가면서 유럽발 가스 가격 급등 사태가 다시 유가 상승을 부추기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물가 경로를 보수적으로 계산했는데,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유럽 날씨가 예상보다 따뜻한 데다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 영향으로 수요가 줄었고, 가뜩이나 겨울 대란 우려로 재고를 최대 저장량 수준까지 쌓아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발 수요 둔화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에너지 가격 하방 압력을 더 키우고 있다.
지난 10월 금통위 당시 1427원대였던 평균 환율이 100원 가까이 떨어진 부분도 향후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쨌든 한은의 물가 전망이 어긋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의 골대가 살짝 움직인 셈이다.
▲한은의 물가 상방 편향 극복과 포워드 가이던스의 명운
주목할 건 이날 금통위는 통화정책 방향 성명서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5%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금통위는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기저효과, 경기둔화 영향 등으로 상승률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5% 수준의 높은 오름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한은 총재를 비롯해 집행부가 연말까지 4%대 물가 상승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에도 통방 문구에선 5% 수준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쓴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5% 수준이라는 게 4%대일 수도 있고 5%대 일수도 있는 중의적 표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선례와 투명한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이 총재의 스탠스를 감안하면 4~5%대 물가 상승률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았나 싶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한은 목표 수준까지 기조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가 하향 추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물가 상승률이 4.99%냐 5.01%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이 총재는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포워드 가이던스의 움직이는 골대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중요한 건 결국 전망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결국 향후 물가가 한은의 전망대로 움직일 것이냐가 관건이다.
물가 상승률이 일시적으로 4%대로 낮아진다고 해도 내년 1월, 2월에 다시 5%대 반등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은 향후 공공요금 인상과 그간 누적된 원가 상승 부담이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기, 가스 요금이 지난 7월과 10월에 이미 두 차례나 인상되면서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 바 있다. 한전, 가스공사 등의 대규모 적자 사태에 직면한 정부가 주기적으로 공공요금 인상에 나서며 물가 하락 속도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은 조사국은 포워드 가이던스의 명운까지 쥔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게 아닌 게 싶다.
사실 지난 2010년 이후 한은 물가 전망의 상방 편향은 비밀이 아니다. 한은은 2010년 이후 매년 물가 계측치보다 높은 전망치를 제시했던 게 사실이다. 저물가 장기화의 원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던 한은은 2015년 이후부턴 관리 물가에 따른 왜곡 문제를 들고나왔다. 정부의 규제 아래 있는 관리 물가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구조적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9년 마이너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나타나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한은은 저물가의 구조적 원인을 전향적으로 연구하면서 이전과 다른 스탠스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체인 교란과 함께 고물가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와 리오프닝 관련 동향으로 경제 전망이 수렴했던 2020년과 2021년 한은의 경제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정확도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의 경제 영향력이 사그라든 2022년 들어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다시 확대되는 상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은이 지난 10년간 보여왔던 물가 전망의 상방 편향을 극복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숫자를 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은 경제 전망의 정확도와 신뢰성 확보는 결국 포워드 가이던스를 끌어안고 가려는 이 총재에게도 핵심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