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환율 1400원·원화 회사채 금리 5% 시대..국민연금 유연한 자산배분 가능할까? - Reuters
(초점)-환율 1400원·원화 회사채 금리 5% 시대..국민연금 유연한 자산배분 가능할까? - Reuters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로 올라서고, 국내 회사채 금리가 5%를 훌쩍 뛰어넘는 등 장기 평균과 크게 괴리된 가격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유연한 자산 배분 전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물가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 긴축, 달러 강세라는 순환 고리가 주요국 통화 가치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원화와 원화 자산 가격이 장기 평균보다 과도하게 떨어졌다면 국민연금 역시 안정적 수익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써 국내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원화 자산 확대 편익 커져
국민연금의 지난 3월 말 기준 투자 비중은 국내 채권(35%), 해외 주식(27%), 국내 주식(17%), 대체투자(14%), 해외 채권(7%)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 6월 심의·의결한 중기자산배분안(2023~2027년)에 따르면 올해 말 국내 채권 비중은 34.5%로 소폭 조정되고 2027년까지 22.9%로 줄어들게 된다. 국내 주식 비중은 올해 말 16.3%까지 축소한 후 2027년에는 14%까지 줄일 예정이다.
반면 올해 말 27.8%인 해외 주식 비중은 2027년에 40.3%로 늘어나게 된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해외 자산 비중을 늘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투자수익률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은 지난 3년간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연평균 6.45%에 그친 반면 해외 자산의 투자수익률은 18.04%에 달했다며 해외 투자 확대 전략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각국 중앙은행의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글로벌 자산시장이 철퇴를 맞고 있는 시점에 투자수익률 관점에서 해외 투자 확대 전략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할 때 환 헤지를 하지 않고 외환 현물 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매입해 투자한 것이 원화 약세를 추동한 결정적 원인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같은 비난 여론과 통상 수준 대비 과도하게 높은 환율 수준을 감안해 국민연금이 결국 환 헤지 비중을 늘리기로 결정한 만큼 향후 해외 자산 투자에 따른 원화 환산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환 헤지에 따른 롤오버 리스크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반면 원화 자산의 투자 매력은 그만큼 커진 상황이다. 현재 국내 주요 ?蓚汰?회사채 금리가 5%에서 6%대까지 올라선 가운데 지난 4일 한국전력공사는 2년물 공사채를 5.5%, 3년물 5.6%, 5년물 5.62%로 발행에 나섰다.
코로나 사태라는 특이 요인이 발발한 2020년 직전 5년간 국민연금의 평균 운용 수익률이 5.4%였음을 감안하면 원화 자산 투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면서 높은 수익을 달성할 수 있는 여건임은 분명하다. 현재 달러/원 환율이 통상 수준보다 크게 높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원화 자산 투자 비중 확대에 따른 시장 전반의 안정 심리 확산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중에 조사받을라..국민연금 전략 경직성 키우는 보신주의
해외 투자에 대해 100% 환 헤지를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연금과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대다수 보험사도 해외 자산 투자를 유보한 채 원화 자산 매입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에 따르면 보험사의 외화 증권 투자 잔액은 올해 1분기에 73억8천만달러 줄어든 데 이어 2분기에도 59억6천만달러 감소했다. 글로벌 금리 상승에 따른 평가 손실 영향도 크지만, 해외 투자 자체를 줄이고 있는 곳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보험사의 한 운용부장은 "지금 해외 투자를 다 중단하고 원화 자산 쪽으로 돌리고 있다"며 "환 헤지 비용을 감안하면 해외 투자의 원화 환산 수익률이 크게 떨어져 자금이 있으면 무조건 원화 자산을 사는 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원화 국채, 회사채 금리가 너무 좋은데 현시점에 매입해 놓으면 향후 2~3년 후에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크게 빠져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처럼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시점에는 원화 채권 비중을 많이 가져가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국민연금의 유연한 자산 배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적지 않다.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전략까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기금운용본부가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외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10년, 20년 텀으로 보면 환율 1400~1500원 수준은 과도하게 평가절하됐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고, 무위험으로 원화채 금리를 5%, 6%대에 살 수 있는데 굳이 해외 투자를 늘릴 상황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국민연금 관계자들은 여기서 시장 안정을 위해 원화 자산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가 이 결정이 정치적으로 비치면 다음 정권 때 또 감옥 가는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현재의 시장은 정말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상황"이라며 "기금운용위원회가 여건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유연한 전략을 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고래는 대양으로 나가야"..국민연금 "지금도 유연해"
국민연금이라는 고래가 원화 자산시장이라는 좁은 물에서 뛰어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처음에 국민연금이 원화 자산 비중을 줄여나가기로 한 결정에도 국내 시장의 한계라는 부분이 고려된 바 있다. 향후 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 수급자가 급격히 늘면서 기금 규모가 축소될 때 국민연금이 주식이나 채권을 매각하면 원화 자산시장이 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당장 원화 자산의 투자 유인이 부각되고 있지만 가격 왜곡 없이 국민연금의 수요를 충족할 정도로 충분한 공급이 가능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연기금의 운용본부장은 "금리가 많이 오르다 보니 몇 달 전부터 공모 채권을 많이 사뒀는데 당장 연말이 가까워지니 이제는 물량이 그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며 "중소형 연기금 입장에서도 사고 싶은 물건을 다 살 수 없는데 국민연금이 들어왔을 때 필요한 만큼의 물량을 매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금은 계속 몰려드는데 마땅히 투자할 곳은 없고 대체투자는 그만큼 수익률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국민연금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사의 한 발행 담당자는 "국내 시장의 경우 큰 고래가 조금만 움직이면 물이 넘치고 난리가 난다"며 "덩치가 큰 곳들은 대양으로 나가는 게 맞긴 하다"고 말했다.
자산 배분 전략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시장의 지적에 국민연금 관계자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며 "현재도 시장 상황에 따라 전체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